
빈틈은 바로 메워지지 않는다
오래된 숲에서 큰 나무 하나가 쓰러지면 갑자기 하늘이 열립니다. 빛이 바닥까지 닿고, 그동안 기다리던 어린나무들이 올라옵니다. 다만 그 공백이 완전히 메워지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립니다.
숲을 자주 다니면서 이 장면을 제품 개발에 겹쳐 보게 됩니다. 시장에 빈자리가 보이면 빨리 채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둘러 채운 자리는 대개 오래가지 않습니다.
네 번째 제품을 미룬 이야기
지난해 저희는 네 번째 제품 출시를 두 번 미뤘습니다. 카테고리는 정해져 있었고, 수요도 확인했고, 시제품도 나왔습니다. 미룬 이유는 원료였습니다.
해당 제품의 핵심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계약 농가를 두 곳 더 늘려야 했습니다. 늘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새 밭은 토양 데이터가 없습니다. 저희 기준으로는 최소 두 해치 기록이 쌓여야 배합에 씁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기준을 한 번만 낮추고 출시하거나, 두 해를 기다리거나. 한 번만 낮춘 기준은 다시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여러 조직에서 반복해 본 패턴이었습니다.
라인업이 적다는 것의 대가
제품이 세 종뿐이면 분명한 불리함이 있습니다. 재구매 주기가 길고, 객단가를 올릴 방법이 적고, 시즌 이슈에 대응할 카드가 없습니다. 유통 상담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도 라인업 계획입니다.
대신 얻는 것도 있습니다. 세 종이면 각 제품의 원료를 끝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압니다. 고객 문의에 원료 이력을 그대로 답변할 수 있습니다.
열 종이 되는 순간 이 대응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때부터는 브랜드가 아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많아집니다.
기다리는 동안 하는 일
숲의 공백도 그냥 비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이 흙이 회복되고, 씨앗이 자리를 잡고, 뿌리가 자랍니다. 밖에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저희가 출시를 미룬 두 해 동안 한 일은 새 밭의 토양 데이터를 쌓는 것이었습니다. 화면에 보여줄 것이 없는 작업입니다. 다만 네 번째 제품이 나올 때, 그 제품에 대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양이 달라집니다.
브랜드를 빨리 키우는 방법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가 택한 것은 느린 쪽이고, 그 선택의 근거는 숲에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