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향과 무취는 다릅니다
무향 제품을 찾는 분들이 기대하는 것은 대개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건 향료를 빼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향료를 빼면 원료 본래의 냄새가 드러납니다.
시중의 많은 무향 제품이 실제로는 마스킹 향료를 씁니다. 원료 냄새를 덮는 용도의 향인데, 전성분표에는 향료로 표기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냄새가 안 나는 것과 향을 안 넣은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희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초본 제품에서는 식물성 오일 특유의 풀 냄새가 옅게 납니다. 이것이 판매에 어떤 값을 치르게 했는지 솔직히 적어보려 합니다.
첫 번째 값: 개발 기간
향료를 쓰지 않으면 원료 냄새를 공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저온 추출로 바꾸고, 정제 단계를 늘리고, 산패가 빠른 오일은 아예 후보에서 뺐습니다.
첫 제품 개발에 예상보다 일곱 달이 더 걸렸습니다. 대부분 향 때문이었습니다. 효능은 두 번째 시제품에서 이미 기준을 넘겼는데, 냄새 때문에 아홉 번을 더 돌렸습니다.
두 번째 값: 초기 반응
출시 직후 후기의 상당수가 냄새 이야기였습니다. 좋다는 쪽과 아니라는 쪽이 거의 반반이었고, 부정적인 후기는 대체로 첫 사용에 몰려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재구매 고객의 후기에서는 냄새 언급이 급격히 줄었다는 점입니다. 2주 정도 쓰면 대부분 인식하지 않게 됩니다. 다만 그 2주를 넘기지 못한 분들이 있었고, 저희는 그것을 감수했습니다.
그럼에도 유지하는 이유
향료가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잘 만든 향은 제품의 일부이고, 저희도 필요하다면 쓸 것입니다.
다만 저희 제품에서는 향이 정보를 가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원료 상태가 나빠지면 냄새로 먼저 드러나는데, 향료가 있으면 그 신호가 사라집니다. 소비자도 알 수 없고 저희도 늦게 압니다.
노지에서 한 계절 기른 원료를 쓰는 브랜드에게 이 신호는 중요합니다. 향을 넣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원료 관리에 실패했을 때 숨을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부담을 지고 가는 편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